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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문당 그것이 알고 싶다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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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ree 댓글 0건 조회 947회 작성일21-07-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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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문당 그것이 알고 싶다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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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경성당 >


청문당과 관련 있는 정정옹주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정정옹주(貞正翁主)[1595~1666]는 선조의 아홉 번째 딸로 해주행궁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한테 직접 효경(孝經)내칙(內則)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여 스스로 예법을 배워 실천하였습니다.

1604(선조 37) 정정옹주라는 작호를 받았고, 1606년 교리 유시행(柳時行)의 아들 진안위(晋安尉) 유적(柳頔)과 혼례일을 택하려 하였으나,

유적이 부친상을 당하여 탈상 후인 1610(광해군 2)에 출가하게 됩니다.

한편 서자로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왕통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후환을 없애고자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폐시키고 살해한 뒤 인목대비(仁穆大妃)마저

폐위하려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정정옹주는 남편과 함께 대비 폐위를 반대하여 유배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이후 궁궐 출입을 삼간 채 왕실의 대소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칩거하던 중 1619(광해군 11) 남편이 병을 얻어 2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인조는 광해군 치하에서 유적이 정의롭게 처신한 점을 칭송하였으며, 정정옹주에게도 두터운 예로 대우하였습니다.

후사가 없어 시동생 유영(柳潁)의 아들 유명전(柳命全)을 입양하였으나, 그도 문과에 급제한 지 2년 만에 사망하고 이후 2년여 만에 정정옹주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임금이 정사를 폐하고 장례비를 지원해 주었으며 몸소 빈소에 가서 남편 유적과 합장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어 내린 유제(諭祭)에서 왕실에서 종성(宗姓)으로 태어나 성품이 온화·공손하여 어머니의 교훈에 따르니 유가(柔嘉)하고 덕용(德容)하더라.

……선왕의 사랑과 도움이 각별하였고, 스스로 종친들과 돈목(敦睦)하여 잘 돌보고 대우하였으며, 두루 고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옹주가 평생 동안 지키고 남긴 자취이었다.”라며

 정정옹주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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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정정옹주 묘 : 안산시 부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 사진설명 : 정정옹주묘가 위치한 곳에 철문이 닫혀 있다. 이곳이 정정옹주묘인지 주민들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를 보전하는 것과 아울러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을의 문화상품으로서 활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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